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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 [문화/여행/스포츠] - 장애를 가진 엄마가 되던 날 '첫 출산' (오사카에서 온 편지 두번째)
2009/01/14 - [문화/여행/스포츠] - 일본에서 장애등급 판정 받던 날 (오사카에서 온 편지 첫번째)

뭐, 벌써 30년도 전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일본에 대한 인상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어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를 침략해 많은 고통을 주었던 나라니까요. 그 폐해로 우리는 오랜 세월 부정적인 식민지 역사관의 족쇄에 채워져 있었고, 피비린내 나는 조국의 동란과 반세기가 넘는 민족의 분단으로 쓰라린 눈물과 아픔의 고리가 악순환되는 근대의 역사를 안고 살아야만 했잖아요.

그 역사의 큰 책임을 가진 장본인이면서 지금도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얄미운 나라, 역사의 과오에 대해 솔직히 사죄하지 않는 뻔뻔한 나라 일본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런 나라에 와서 내가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게 되다니…, 참으로 사람 일이란 세 치 앞을 모르나 봐요.

흑백의 추억 그리고 칼라로 바뀐 세상

그런데 11년 전 처음 왔을 때도 느꼈지만, 이 나라는 전반적으로 꽤나 안정되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90년대까지는 전국민이 중산계층이라며 자부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정도는 평균적인 살림살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서 일본의 경제성장이 가장 눈부셨던 시기가 60년대로, 그 당시에 이미 일반 가정에는 텔레비전·냉장고·세탁기라는 3대 가전제품이 파급되었다고 합니다. 되돌아보면 한국에선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70년대 중반, 막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이웃집 마루에 친구들이 모였던 기억이 나거든요.(지금이야 한국도 첨단기술을 달리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지만 말이에요.) 그것만 봐도 일본이 한국보다는 경제성장이 앞섰던 것 같아요.

도시 인프라의 면만 봐도 평균적으로 꽤 높은 수준으로 정비되어 있고요. 우리보다도 앞서서 서구문화를 받아들였고, 패전은 했지만 차근차근 현대화를 추진해 온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사회 모습의 정착과 더불어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발전했다고 보이고요.

어느 사회나 마이너리티인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나 정책이 가장 나중에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일본에서도 60년대부터 일어나기기 시작한 장애인들의 인권운동이 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해, 최근에 와서야 겨우 ‘노마라이제이션’이나 ‘버리어 프리(무장벽사회)’라는 의식이 넓혀지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대요.

왠지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저 약간 아는 척을 한 것뿐이고요. 제가 이곳 사람들과 만나면서 느꼈던 인상의 뒤편에는 그런 사회적 배경이 있지 않은가 싶어서요. 오늘 꺼내려는 이야기는 제가 오사카의 한 동네 주민으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기억에 남겨진 거예요.

배려하는 마음,  그 자연스러움

이곳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사는 것도 처음이지만, 결혼을 해 신혼생활을 시작했으니 제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고 할 수 있었지요. 아침에 일어나 남편을 직장에 보내고 나면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매일 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하루도 거를 수 없는 것이 식사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을 보러 가야 하는데, 집 근처에는 비장애인의 보통 걸음으로 5분 정도 거리에 슈퍼가 있었고, 바로 옆에 전철역까지 이어지는 긴 상점가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보통 걸음 5분이 20분은 넘게 걸리고, 시간뿐만 아니라 몸도 지쳐버리니 슈퍼 다녀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제가 한국에서는 무릎까지 하는 보조기를 신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휠체어는 쓰고 있지 않았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15년 전 서울만 해도 휠체어를 혼자서 타고 다니기에는 장벽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오사카에 와서 장애인수첩을 발급받고 구청에 2급 신체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자, 우선은 보조구를 지급받을 수 있었어요. 저의 생활에 필요한 보조구며, 지팡이·손잡이·휠체어 등을 리하빌리테이션 센터라는 곳에 신청을 해 전문 업자에게 주문을 하는 절차로, 그 비용은 가구 연간소득이 300만 엔 이하인 장애인에게는 무료로 지급되었어요.(지금은 법이 바뀌어 「장애인자립지원법」에 의해 정해지는데, 소득에 따라 감면이 있지만 기본은 10%를 부담하는 것으로 되었죠.)

그래서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저의 집은 연립 1층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약간 높은 계단이 한 단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휠체어를 쉽게 쓸 수 있도록 집주인이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해 주더군요. 그 비용은 주택개조비로 구청에서 나온대요. 그리 절차도 복잡하지 않았고 특별히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주인이 한 번에 설치를 해주더라고요.

그리고 길에는 턱이 없고 슈퍼나 가게의 입구도 단차 없이 들어갈 수 있으며, 충분한 넓이는 아니지만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는 확보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점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물건 사는 것도 도와주고요. 일부러 부탁을 하고 눈치를 봐서가 아니라 당연하게 요구를 하면 받아들여 준다는 것, 그것은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고객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신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들도 그렇지요. 슈퍼 안에서 시장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지적장애인이 있었는데 활동보조인이 그에게 이야기를 하고 대응을 하는 사이, 직원이 곤욕스러워하거나 불만을 말하는 손님들은 없었어요. 물론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지만요.

물론 제가 사는 동네는 좀 더 이문화를 받아들이는 풍토가 있다고 보지만(재일동포가 많이 산다든가, 타지역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와서 산다든가, 장애인 단체가 많다든가 하면서). 거리에서도 휠체어 탄 사람이나 활동보조인과 함께 외출하고 있는 지적장애인을 쉽게 접할 수 있답니다. 별스럽게 보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동네에 함께 산다는 것을 실감하게 돼요.

"집이 어디에요? 내가 데려다 줄게요! "

그렇지만 장애 있는 사람이 혼자서 비장애인과 똑같은 일을 치러낸다는 것이 결코 수월하지는 않죠.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시장을 다니는 것은 그나마 낫지만, 아이가 생기니 정말 힘들더군요.

남들보다는 2배 이상 시간이 걸리니 젖먹이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갈 수도 없고, 결국 제가 탈 휠체어에 아이를 태우고 그 휠체어를 밀면서 슈퍼를 다니게 됐답니다. ‘산책이라고 생각하자. 운동도 해야 하고, 아이도 기분전환을 해야 하니까….’하며 이것저것 좋은 핑계를 붙여가며 힘을 내 집을 나서는 거지요. 한 걸음 또 한 걸음, 아이에게 말도 걸어가며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요.

하루는 슈퍼에 도착해 물건을 사고 돌아가려고 가게문을 나서는데, 아이고 어쩌나! 비가 엄청 쏟아지는 거예요. 혼자라면 맞고라도 가겠지만, 그리 더운 날도 아니고 이삼십 분 비를 맞히며 걸어갈 수는 없잖아요. 어쩌나…. 그때였어요. 한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우산을 들려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집이 어디에요? 내가 휠체어를 밀어서 집에까지 데려다 줄게요.”

뭐라고 고마운 인사를 해야 할지 말을 잃었어요. 괜히 우물쭈물 해봤자 시간만 걸리니, 그저 고개를 숙이고 시키는 대로 따랐지요. 휠체어에 제가 타고, 아이를 제 무릎에 앉혔습니다. 물건은 뒤에 걸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었지요. 아주머니는 자기 짐과 자전거를 슈퍼에 세워둔 채, 꽤나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휠체어에 저의 모자를 태우고 집에까지 밀어다 주었어요. 물론 돌아가실 때도 비에 흠뻑 젖으셨겠지요. 그 분 성함도, 집도 모르지만 지금도 그분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아요. 정말 고마운 분이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럴 수야 없을 거고 눈에 보이는 편의시설도 필요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해 서슴없이 나서 주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면 정말 무장벽의 마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변미양 (지체장애인, 재일동포와 결혼해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Posted by 미싱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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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 [문화/여행/스포츠] - 일본에서 장애등급 판정 받던 날 (오사카에서 온 편지 첫번째)

덥다덥다 했는데 8월도 중반을 지나니 과연,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오사카는 이번 여름 유독 더워서 40일 이상 3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되었어요.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는 오사카, 눈을 보기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답니다. 일본은 자연풍토가 한국과 비슷해서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말하지만 요즘은 봄이 왔는가 싶으면 금세 여름, 긴 여름이 계속되나 싶으면 순식간이 바람이 서늘해지고 겨울이 들이닥치니까요. 여름, 겨울 두 계절의 인상밖에 안 남아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요, 오사카의 겨울은 서울만큼 춥지가 않아 가로수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서울의 11월 정도의 풍경이랍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만 30년을 살다가 온 저로서는 하얀 눈 쌓인 겨울의 인상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인지, 오사카의 겨울이 겨울 같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다 보면 해가 바뀌고요.

오사카에서 11년째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항상 시각적인 계절 감각이 따르지 않아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얼떨떨함 가운데 나이를 먹고 만답니다. 아무리 비슷한 환경으로 바뀐다고 해도, 태어나면서부터 배어 버린 감각을 바꾸며 적응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오늘은 그런 시각적, 시간적 혼동과 더불어 제가 처음으로 경험한 오사카의 겨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타향살이병이 아닌… 임신

유별리 놀러간 곳도 없이 어느새 여름방학도 마무리에 접어드네요. 숙제하라고 목청만 높아지는 하루하루지만,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 약간의 서비스 차원에서 동네의 햄버거가게에 가기로 했지요. 세 식구가 집을 나서 저는 전동휠체어, 작은애는 자전거, 큰애는 걸어서 동네를 걸어갑니다. 시장길 따라 가다가 큰길 건너 골목길로 접어들다가, 놀이터가 보였어요.

‘아, 오랜만이다!’ 이 놀이터에는 듬뿍 정겨움이 느껴져요. 왜냐고요? 지금은 이사를 했지만, 낯설고 물설던 처음 시기가 있었죠. 이 공원 맞은편에서 살았고, 모르던 것들을 하나하나 익히던 곳이니까요.

오사카에 온 것이 3월, 그런데 그 처음 3월과 4월,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도 멍한 상태였지만, 몸도 너무나 힘이 든 거예요.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남의 나라에 와서 산다는 힘겨움은 이렇게 신체적으로도 나타나는가 보다 하면서 한동안을 참고 지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냥 타향살이병이 아니라 임신이었던 거예요.

그야말로 저에게는 난생 처음인 임신 소식에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더군요. 우선 병원에서 임신진단을 받으면 구의 보건센터에서 모자수첩이라는 것을 발급받고, 5회 정도 병원에 정기진찰을 받으러 가야 했어요. 이동이 어렵고 말이 서툰 저를 위해 매번 남편이 병원으로 동행을 해주었는데, 병원에는 저희 남편 말고도 많은 예비아빠들이 함께 와서 진료를 받더군요. 그리고 예비아빠가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서는 몇 차례 교육도 받아야 했는데, 그 교육을 신청하는 예비아빠들도 많이 있었어요.

지금은 한국에서도 일반적으로 되었는지 몰라도 11년 전 제가 서울에 있을 당시에는 아직 출산이라는 것은 여성 혼자서 감당한다는 의식이 일반적이었고, 조금은 남에게 보이기 꺼려하는 의식이 있었기에 일본에서의 그런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출산이라는 의식을 부부가 함께 치러나간다는 열린 모습이요.

태아의 성장 그리고 분만대기실

그렇게 더운 여름을 보내며 배는 조금씩 불러오고, 보이지는 않지만 커가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제가 산책 겸 찾은 곳이 바로 이 놀이터의 큰 나무 밑 벤치였어요. 아이가 처음 들어선 3월의 썰렁하던 풍경에서 그 큰 나무는 시간과 더불어 여름의 무성함을 보여주며 힘차게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었어요. 강하게 땅에 내린 뿌리로 큰 숨을 들이쉬며. 마치 제 뱃속의 아이의 성장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듯 했어요. 저는 날마다 나무를 찾아가 그 그늘 아래서 심호흡을 가다듬었답니다.

이윽고 가을 넘어 11월에 접어들자, 이제 언제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괜찮도록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어요.

“변미양 씨는 하반신 감각이 마비되어 출산을 맞이하는 데 긴급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예비일인 12월4일의 일주일 전에는 미리 입원을 하시고 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의사의 조언에 저도 안심이 되었어요. 그래서 11월말 미리 입원을 하고 대기를 했지요. 입원한 병원은 오사카에서도 산부인과로는 역사가 있는 큰 병원이었고, 의사 선생님도 경험이 많은 분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낮에는 출산을 대비해 신생아의 수유와 모체의 변화 등 교육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닥칠 진통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시간은 더디기만 했어요. 그리고 8명이 함께 쓰는 병실에는 모두 이미 출산을 마친 산모들로, 출산을 기다리는 사람은 저뿐이었답니다. 왠지 안심하기 위해 미리 입원한 병원의 시간들이 저에게는 하루하루 초조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예비일이 지나 하루, 이틀, 다시 일주일을 넘기자 저는 출산이 늦어지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극에 달해 신생아와 산모들로 둘러싸인 병원에서의 생활이 우울하기만 했어요. 그런 저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의사 선생님이 회진시간에 말씀하시더군요.

“초산은 예정일보다 늦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 계시는 게 더 안심이 되신다면 일단 퇴원을 하셨다가 다시 진찰을 받으러 오시지요.”

그래서 저는 다시 남편과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생명의 탄생이 그리 간단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지만, 뱃속의 아이가 세상에 터트려 줄 그 울음소리를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는 나날을 보냈어요. 혼자서 기다리는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이웃집 토토로’라는 비디오를 매일 보며, 저렇게 건강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만 태어나 주기를 기도했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과 시장에 나갔다 돌아오는데 갑자기 양수가 터져 나와 긴급히 병원에 재입원을 했어요. 그래도 병원에서는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며 자연분만을 기다리자고 했고 링거를 꼽고 기다리기를 3일째. 드디어 저도 출산의 진통을 맛보게 되었답니다. 그 고통은 출산을 경험한 엄마들 모두의 아픔과 하나 다를 게 없었지요.
그리고… 저도 건강한 남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마침 제 옆 침대를 쓰고 있던 엄마도 같은 날 출산을 했는데 첫딸 아이로 아이의 이름을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인 메이로 지었다는군요. 저는 왠지 태어나기 전부터 익숙해졌던 그 이름에 친근감을 느꼈고, 그 후로 그 엄마와는 몇 번이나 연하카드를 주고받았어요.
자, 저의 두 아이, 이제 그 첫 아이가 5학년이고 둘째가 2학년입니다.

장애를 가진 엄마가 된다는 것, 장애를 가진 엄마의 아이라는 것.

우리는 살아가면서 또 매일매일 싸우고 배워가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탄생과 출산을 경험하기 위한 아픔을 치러낸 것이 우리에게는 큰 경험이 된 것 같아요.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고 하지만, 정말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울어도, 콧물을 질질 흘려도, 자다가 침을 흘려도 어찌 그리 예쁜지….

(한마디 덧붙이면…오사카시에서는 출산육아일시금으로 35만 엔이 지급되며,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분의 임신·출산에 대해서는 상담을 통해 무료로 의료지원을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변미양 (지체장애인, 재일동포와 결혼해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Posted by 미싱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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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렇게 되네요. 일본 오사카에 와서 11년, 제 자신 스스로도 놀라 버려요.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에 와서 삶의 나침판을 찾아가며 하루하루를 산다는 게 어느새 11년, 강산도 한 번은 변했네요.

제가 현재 사는 일본 오사카라는 곳은, 한국과 비교하면 부산 같은 분위기라고 많은 분들이 말하더군요. 바다가 가깝고 사람들의 기질도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데다 표현이 적극적이라고요.

그런 오사카 안에서도 11년간 반경 2km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는 저의 집 주변은 이쿠노라고 하는 동네로, 일본 안에서도 한집 건너 재일동포일 정도로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코리아 타운으로 김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에요.

제가 일본으로 오게 된 것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던 어린이집에서 유학생으로 왔던 재일동포3세 남편을 알게 되었고, 이런저런 곡절 끝에 결혼을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요. 제가 오사카에 도착해서 남편에게 이끌려서 온 곳이 조선시장이라고 불리는 재일동포 밀집 지역이었고, 시댁과도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얻은 두 칸 방 셋집이었습니다.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재일동포들이 많이 사는 이 곳이지만,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답니다.
재일동포라고 해도 식민지 때부터 건너온 이 분들은 어느새 3세들이 주류가 되어 있고, 고달픈 역사의 뒤편에서 조국의 역사도·문화도·글도·언어도 당당히 교육받지 못한 가운데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죠.

일본말을 쓰며 살아온 긴 세월 속에 이제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일본인과 구별이 되지 않아요.
저의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늘어선 집들의 문패를 보면 누구 하나 한국 이름이 없었어요. 다만 살다 보니 ‘아, 이 분은 한국분이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어느 날 좀처럼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없는 집 앞을 지나면서 제가 어떤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현관문을 열고 나오던 그 집 아저씨가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한국 사람이세요?”라며 우리말로 인사를 하시는 거였어요.

몇 년이나 살면서도 그 집에는 일본 이름의 문패가 달려 있기에 일본분이 사신다고 생각을 하던 저는 불쑥 건네 온 한국말에 오히려 당황을 해 버렸답니다. 아, 정말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구나….

자, 서두가 길어졌습니다만, 그렇게 이곳에서 살게 된 제가 생활을 하자니 처음엔 막연했지요.
아침에 일 나가는 남편을 보내고 나면 멀뚱히 방안에만 처박혀 우두커니 있다가, 어둑어둑 날이 저물어서야 돌아오는 남편만 기다리며 사는 며칠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어요. 제가 일본에서 살기 위해서는 외국인등록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서류절차가 끝나면 장애인수첩을 발급받아야 한다고요. 그래야 필요한 복지적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데, 한국은 이제 장애인카드로 바뀌었지만 일본은 장애인수첩의 형태이고 그것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지정된 병원에서의 의사진단서가 필요했어요.

장애인 여러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겠지만 장애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요.
거기다가 저는 처음 보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의사 앞에 앉아 이것저것 몸 상태를 확인받는 것에 무척 긴장을 했답니다.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장애인등급판정을 ‘오사카시 리하빌리테이션 센터’라는 곳에 가서 면담을 하고 의사의 진단을 받는 날이 왔어요. 저는 일본말을 하지 못하니 데려다 준 남편만 믿고 따라갈 뿐이었지요. 우선 창구에 접수를 하고 몇 가지 서류에 인적상황 등을 기입하고 기다렸어요.

“변미양 씨!”
안내에 따라 들어간 면담실, 담당직원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잠시 적막한 시간이 흘렸어요. 서류를 훑어보던 그 직원.
“아…아? 그런데 일본 이름은 뭐예요?”
“예?”

일본말도 못하는 한국 사람을 앞에 두고, 서류에 적힌 국적이며 주소, 이름을 보고도 일본 이름이 뭐냐고 묻다니, 질문의 뜻을 알 수가 없었어요.

“일본 이름이라니요? 제 이름은 변미양 하나이고 일본이름은 없어요.”

불쾌함과 당황함이 엇갈린 저는 약간 흥분된 억양으로 대답했어요. 그후에는 무슨 질문이 오고 갔는지 기억도 안 나요. 하지만 이 일본이라는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생김새며 생활양식이 닮아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일본 사람과 같은 말, 같은 이름을 쓰며 사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그 날의 일은 너무도 선명히 남아 있어요.

특히 우리 재일동포들에게는 이름을 빼앗기고 문화를 빼앗긴 역사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인데 너무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일본이라는 외국에 온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장애, 문화의 장애, 이름이라는 아이덴티티의 장애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고, 전혀 알아채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눈에 보이는 신체장애등급을 판정 받으러 갔던 제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의 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수속이 끝나 저는 지체장애인 2급이라는 장애수첩을 발급받고, 행정적 서비스를 받을 자격을 얻어 살게 되었지요. 생활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등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일본, 우리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밥 먹는 것 하나만 봐도 숟가락을 쓰지 않고 젓가락으로만 먹는 등 문화의 차이는 정말 많아요. 나라의 틀이나 제도, 사고방식 등 다른 점이 많습니다. 한국보다는 경제적으로 일찍 성장을 했으니 좋다고 하는 점도 있지요. 하지만 저마다 모두 다른 장애를 가지고 사는 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과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도 사회적 틀과 제도가 가져다주는 안심감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죠.
저는 한국에 있을 때 길을 건널 때마다 신호등 앞에서 심호흡을 했었어요. 순식간에 깜박거리는 ‘저 파란불이 꺼지기 전에 길을 건너가야 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그래도 언제나 노란 중앙선에서 다음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지요. 장애인, 노약자가 건너기에 서울의 신호등은 너무 짧잖아요.

그런데 이곳 오사카에서 처음 신호를 건널 때 제가 길을 다 건너고 나서도 파란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답니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그래서 저는 이제 신호등을 건널 때 그리 조급해지지 않아요. 조금 여유 있는 신호체계 하나에서 느끼는 이 안심감, 저는 그것이 그 사회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품을 잴 수 있는 기준이 아닌가 싶어요.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바람이라도 통하게 꼭꼭 조이지 말고 품을 좀 넉넉히 하면 좋겠어요.

변미양 (지체장애인, 재일동포와 결혼해서 일보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Posted by 미싱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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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제주 하늘>

언제서부터인지 모르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제주도를 향합니다.
아마 외국까지 나가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들고, 국내에서 해외 나가는 느낌을 찾으려니 자연스레 제주도를 찾게 되는 건 아닌가 싶네요. 

이를 방증하듯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의 큰 잔치, 장애인활동가대회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제주도에서 30일부터 열리며, 생활시설 등 주최로 크고 작은 캠프가 제주도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장애인 편의시설 수준은 어느정도일까요.
제주도에서 사는 게 아닌지라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지방 중소도시보다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마도 관광지로 꾸며진 제주도 특성상 건물을 지을때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고려했으며, 바람때문에 건물들이 높지않아 계단을 올라가야할만한 곳이 그리 많지않기 때문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각설하고, 제주도를 찾을 장애인과 다른 비장애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제가 다녀본 관광지를 중심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함께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처음 제주도를 여행할때만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둘러볼까 고민했는데, 이거 정말 영양가 없더라고요.
처음 몇번은 유명한 관광지 중심으로 대충 둘러보는걸로 만족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많은 아쉬움이 듭니다.

제주도를 잘 아시는 분들에 따르면 제주도를 제대로 즐기려면 동서남북, 4코스로 나눠 북에서 서로, 남으로... 이렇게 권역을 나눠 원하는 관광지를 찾아 보는게 가장 빠르고 알차게 보는 방법이라고 하네요.

이번 글에는 제주 공항에서 출발해 하루동안 다녀올 수 있는 제주도 동부권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일전에도 글을 남긴 적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우도이기에 이곳을 찾는 코스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입항하는지는 먼저 글에 남겼기 때문에 생략하고, 우도 내 유명 관광지를 한번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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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술 한잔이 생각납니다>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우도에 대한 설명을 붙여 보자면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해 지어진 이름으로, 우도의 대표적인 풍경은 우도팔경이라 하여 낮과 밤(주간명월, 야항어범), 하늘과 땅(천진관산, 지두청사), 앞과 뒤(전포망대, 후해석벽), 동과 서(동안경굴, 서빈백사)를 손꼽는다."고 합니다.

걷는데 불편함이 없는 이들이라면 굳이 렌트카를 끌고 들어오기보다는 섬 내에 있는 대중교통이나 오토바이 등을 이용하는게 저렴하게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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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쇠머리오름(132km)에 있는 우도등대입니다.
몇년전에 갔을때만 하더라도 공사 중이어서 근처까지만 가봤는데, 이제는 공사가 마무리 돼 올라가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등대 박물관도 있다고 하는데, 여기도 못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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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지형 특성상 쇠머리오름을 올라야 하는데, 이게 휠체어를 탄 분이나 유모차를 끌고 올라가기에는 심히 무리가 따릅니다.
그나마 바닥을 고무로 깔아놓아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높이까지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공사하면서 반대쪽에 길을 닦아놓아 다리가 불편한 분들도 올라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하는데, 그쪽으로는 가보지 못해서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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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밑으로 내려와 보니 검멀레 해수욕장과 검멀레 동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름처럼 해변의 모래가 검은 색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검은모래의 제주도식 표기가 아닐까 싶네요 ^^

동굴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물때를 잘 맞춰서 들어가야 합니다. 안그랬다간 들어가는 길이 사라지는 낭패를 당할지도 -_-;;

이곳에 가려면 30미터 가량 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서는 모래사장을 지나가야 합니다.
경사로가 있을리가 없겠죠?
이곳을 여행할때마다 휠체어를 탄 분이 같이 있어서 제대로 된 동굴탐방은 해보지 못했는데, 동굴 안에 들어가니 아저씨 한 분이 연신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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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온 친구커플과 우도에서 즐거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데, 물속에 낯익은 먹거리가 나타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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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요놈 되겠습니다. 바로 시식에 들어가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방생해줬습니다. 얼마나 물이 깨끗한지 잘 알수있죠?>

우도하면 또 빠질 수 없는게 서빈백사라 불리우는 하얀 모래사장입니다.
동양에서는 한곳 밖에 없는 산호 관광지라고 하는데, 바닷빛에 반사되는 모래사장의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이전 글에도 올려놨지만, 우도 역시 대부분의 백사장에까지 내려가기 위해서는 콘크리트로 만든 돌계단을 지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해변가와 달리 곳곳에 경사로 등을 만들어 놓아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해녀가 많은 우도 특성상 물질해서 잡은 것들을 들고 올라가기 편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라 추측해봅니다.

경사로라는 게 휠체어를 탄 이들에게만 편리한 게 아닌데... 전국 어느곳을 가봐도 느끼는 아쉬움입니다.

숙소역시 대부분 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지어져있습니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예쁜 팬션들도 많이 지어져있는데,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시설이 돼 있는 곳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피서객들을 위해 화장실은 잘 꾸며져 있더라고요.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된 곳도 있는 곳도 있었고, 다른 곳에 비해서는 비교적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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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일출봉 앞 해안가 도로에서 만난 친구들입니다. 역시 노는게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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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노는 꼬맹이들 사이로 해녀 아주머니가 바닷속에서 잔뜩 먹거리를 건져 오셨습니다. 밖에서 연신 담배만 피시던 아저씨가 후다닥 뛰어 내려가시더니 이걸 받아 짊어지고 올라오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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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도를 나와 성산일출봉으로 가봅니다.
전 개인적으로 성산일출봉도 좋지만 성산일출봉을 올라가기 전, 해안가를 따라 나있는 도로를 둘러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음식점들도 만나볼 수 있고, 운때만 맞으면 해녀들의 모습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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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에서 내려다 본 제주도 바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하얀 등대 보이시죠? 저기까지 길이 나있답니다>

자 어둠이 내리기 전, 드라마 '올인'의 올인 하우스로 유명한 섭지코지를 찾아갑니다.
신양해수욕장에서 2km에 걸쳐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곳으로 섭지란 '제주많은 사람'을 많이 배출하는 지세, 코지는 곶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랍니다.

주차장에 도착해 비교적 완만한 높이로 잘 닦여진 길을 계속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올인 하우스도 눈에 들어오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작은 등대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데 조금 힘들긴 하지만 다른 곳보다 바닥이 잘 닦여진 편이어서 휠체어를 탄 이들도 보조인이 밀어준다면 올라가볼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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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섭지코지까지 올라왔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내리기 시작하네요.
불덩이 같은 태양사이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상낙원에 온듯한 느낌입니다.

화장실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마땅히 준비된 곳이 없어 유료입장인 올인 하우스를 이용하거나 주차장 옆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합니다.

제 기억에는 주차장 옆 화장실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었던 것 같은데... 휠체어를 밀고 다녔더니 사진 찍어 놓은 게 없어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_-;;

요 정도 코스로 돌아보면 하루 알차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우도를 제외한 나머지 관광지는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이름값만큼 잘 꾸며 놨기 때문에 화장실 등 편의시설 걱정은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그러니까 다리가 불편하신 이들은 관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죠.
하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점자 표기판을 찾아 볼 수 없는 점은 무척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장애가 있는 이들이 여행을 즐기는 건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해야 할까요?

더많이 찾아가 더 많이 요구해야 겠지요.
그동안은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요구해서 필요한 편의시설은 만들어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Posted by 미싱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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